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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사명을 다할 진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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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경제선진국이다. 경제규모는 세계10위권이고  1인당 GDP는  약35,000달러로 

세계 31위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구호가 "잘살아 보세", 잘먹고 잘살아 보자"였다. 


이는 북한의 김일성이 1962년 천리마운동을 시작하면서 이상적인 북한의  풍요사회로 내세운 

" 전 인민이 기와집에서 쇠고기국에 이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구호와 같다.


남북이 다같이 잘살아보세를 외쳤던 시대였다.


60여년이 흐른 지금 남북은 경제규모로는 100배 가까이 차이가 나고  1인당 GDP로는  5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비교가 불가능한 지경으로 남한의 완전한 승리로 결론이 난듯 하다.


그러나 과연 진정한 승리이자 이상사회의 건설에서
성공한 것인가를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가까이 중국도  등소평의  실용주의 노선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우선  경제적 성장을 이루자는  선부론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하였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그대로 받아 들인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하에 공동부유라는 근본목표를 설정한 후 시장경제를 수용한 것이다.



50여년이 지난 중국은 괄목한 경제성장으로 GDP 18조 6천억 달러로 미국의 28조 달러에 이어 세계 2위로  미국과  패권을 겨루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극심한 불평등과  부패는 중국식 사회주의 공동체를 붕괴시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시진핑은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인식하고  또 다시 공동부유론과 부패척결을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였다.



반면 미국은  60~70년대에  절대적인 세계최고의
경제대국이자 군사대국으로 유일한 패귄국가였고
대공황 국복과정에서 상류층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국가철학으로 사회민주주의라 할 정도의  공공성이 강화된 국가였닺



그야말로  말 그대로  "자유와 기회"의  생동하는  건강한 사회였다. 



그러나 60여년이 지난 미국은 세계의 모든 불평등과 양극화를 조장하여 지구공동체를 파괴시키는 폭주하는 천민자본주의의 근원으로  작동하고 있다. 지구공동체를붕괴시키는 악의 축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인 것이다.



한국의 현재를 돌아보면  수십년동안  미국만 추종한 결과 겉만 화려하지만 속은 골병이 든 참담한 상태로  왕조말기 사회라 할 수 있는  최악의 사회가 되어 있다.



거대 야당 대표경선에서 "먹자니즘"이라는 용어가 대세를 휘두르는 구호로 등장하는 참담하고 한심한  사회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찌 60여년전의 구호를 외형상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다시 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동안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도대체 무얼했고  나라의 방향을 어디로 이끌었단 말인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사람살기가 힘든(국민의 90%에 달하는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 지옥같은 사회를 만든 자들이 이 사회를 지배해왔던  양대 기득권  정당과 공무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발언을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아니 선거때만 립서비스로  내세우는 진심이 아닌 
거짓이기 때문에 규탄하는 것이다.



이재명이  먹사니즘이 시대의 이념이 되어야 한다는 정치이념이 진심이고 철학이었다면



일관되어야 하고  언행이 일치하여야 한다.



그러나 시류에 영합하고 일관성이 없다.



사회 상류층에도 이로운 정당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거나 종부세나 상속세 완화해야 한다거나



감세정책에 국민의힘과 공동보조를 맞추면서
한편으로는 기본사회니 기본소득이니 온갖 복지정책을 남발한다.



엄청난 재정수요를 필요로 하는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상류층과  가진자의 사회직 책임, 증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나는 사회적 책임운동을 범국가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건의를 이재명 대표에게 한적도 있지만 아예  무반응이었다.



이로 미루어 살피건대  이재명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정치인 가운데  시대상황을 진정 고민하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통찰하여 진심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참된 정치인은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다.



개인의 출세영달보다 일신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하더라도 시대적 사명을 다할 진심어린 정치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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